신영길 경상매일 중부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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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걸어온 길

내가 걸어온 길은 고해성사 같은 심정으로 부끄럽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모든 일들을
사실대로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숨김없이 소개하려 하니 부담 없이 봐 주었으면 한다.

▲ 대구고 3년시절 친구 김을수와 함께

팔방미인 유년기, 남다른 어린시절을 보낸 신영길

나는 고아읍 관심1리 출신으로 고아초등, 선산중학을 거쳐 60년대 대구로유학 대구고등, 경북대 경력이다. 고아초등학생시절 공부도 우등생이었지만 웅변, 음악, 글짓기 등 매사에 실력을 인정받는 등 여러 방면에서 남달랐던 것 같다.

고아초등 4학년때 음악시간에 고등학교 시절에나 배울 이태리 민요 로렐라이 언덕을 불러 당시 담임선생님의 칭찬과 함께 즉시 이 노래를 급우들에게 가르킨 일이 기억속에 남아 있을뿐만 아니라 4학년 시절 당시 선산군 관내 전 초등학교 아동 웅변대회에서 2등을, 백일장에서 차상에 수상 당시 도시의 고등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멋진 가방과 그 당시 초등학생에겐 읽기 어려웠던 벨텔의 슬픔이란 책을 부상으로 받아 초등4학년에 이를 완독 하는 등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같다. 특히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교회에서 풍금을 연주, 성가대 대열에 끼었던것은 자랑스러운 기억이다.

웅변은 전국대회까지 참석하면서 입상한 경력, 백일장은 고등학교까지 계속되면서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 문화제까지 참여하기도 했을뿐아니라 대구고등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들국화'란 주제로 수필부문에서 차상을 받아 교우지 '달구' 2호에 내가 좋아하던 독일시 '미뇽' 번역작품과 함께 실려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또 군(軍) 시절 강원도 골짝 골짝을 다니며 느끼고 남긴 글들을 간직하고 있고 현재 먼 훗날 망인(亡人)이 되었을 때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수필형식으로 집필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시절 기억나는 것은 내가 아침 일찍 등교 흑판에 자습문제를 낸뒤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친구들의 점수를 올려놓았던 일은 꽤 기분이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대학에 입학 대학생활이 시작되던 시절 나라의 부름을 받아 육군에 입대 육군을 만기제대를 한 후 복학을 미룬 채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어가 경찰 및 지방공무원시험에 응시 모두 합격 대학 복학을 하느냐 직업을 택할 것을 고민하다가 결국 직업을 택할 것을 결심하고 지방직 공무원보다 경찰에 매력을 느껴 경찰을 택했다.

경찰의 기로에 들어서기부터 은퇴에 이르기까지

1967년 영덕경찰서 초임근무를 시작으로 동대구경찰서(현 대구북부경찰서), 대구동부경찰서, 경북 경찰국 근무 등 13년4개월의 그리 길지 않은 기간중 교통, 정보2계 형사, 수사과 형사계 반장 및 주임,경북 경찰국 강력반장, 경북경찰국 감찰주임, 대구지방검찰청 구치소장, 대구동부경찰서 상동파출소장 등을 역임한 뒤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13년4개월의 짧은 경찰 생활 기간 중 대통령 1회 내무부장관 2, 경찰국장 8, 경찰서장 14, 경북도지사의 자랑스런 공무원 3회 선정, 등 모두 28 회의 표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75년 대구 동촌 비행장에서 발생한 비행기 이착륙용 전자기기 1만1000달러 도난사건을 수사하면서 용의자 12명 전원검거와 피해품 전자기기 전량을 회수해 76년2월9일 미 공군사령관 돈 티 피트만 사령관으로부터 받은 감사장 79년 4월1일 발생한 미국인 살해사건의 용의자를 검거 미육군 범죄수사대 제7지구대장 헌병 대령 로버트 제이 리-키로부터 감사장 1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제33회 경찰의 날 무궁화 봉사왕으로 선발 최규하 대통령으부터 메달을,1975년부터 1979년까지 동부경찰서 수사과 형사계에 근무하면서 강력범 31건 36명, 어린이 유괴범 2건 2명, 교통사고 야기 도주 4건 4명, 절도범 201건 178명 구속 폭력사범 162건 107명 구속, 기타 형사범 147건 56명 구속 그리고 2399만여원 상당의 재산을 회수한 실적으로 1979년 전국경찰의 귀감으로 인정되는 청룡 봉사상 용상 경북대표 추천으로 1계급 특진의 영예는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큰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 제33회 경찰의 날
무궁화 봉사왕으로 선발,
최규하 전 대통령께서
1계급특진 수여. ▲ 대구동부경찰서 형사주임시절
동료들과 함께 (가운데 신영길)
▲ 기억상실증 청년 이현민과 함께 ▲ 1978년 5월 2일 조선일보에 실린
이현민의 기사

이웃사랑의 시작... '내가 먼저' 라는 생각부터...

또 나는 불우한 이웃돕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무원 재직중 처음 내가 살던 고향 구미시 고아읍 관심1리 아버지가 다른 노인들과 휴식을 취하는 속칭 사랑방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명절 때만 되면 대구시내 경로당을 순회하며 떡국 끓여 들이기 등을 실시했고 특히 사건을 취급하던 중 기억상실증으로 확인된 절도 피의자 21세가량 가명 이현민 군을 발견 2년간 함께 살며 지문조회,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아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문화방송.KBS.기독교 방송 등 메스콤을 통해 전국적으로 부모 찾아주기 운동을 벌였으나 결국 부모를 찾지 못한채 취업시킨 것으로 끝나버린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속에서 언론인과 정치인들을 접견하며 소주잔을 나누는 친밀감을 나눴으며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사람은 매일신문 김찬석, 노채식, 이진협, 김병호씨(이상 전 중부본부장), 영남일보 구활씨(매일신문과 통합후 북부본부장. 수필가),박인호, 조선일보 박서흠, 중앙일보 이용우, 한국일보 이동수 씨 등과 방송인으로 문화방송 정상화(현 교통방송 이사), 신경철, 김문오, 김종찬, 이상기 , 당시 기독교방송 박재건, 이혜만 기자 등으로 가끔 술잔을 나누는 우호관계를 갖기도 했다.

이밖에도 정치인으로는 이효상, 이원만, 강재구(영남주물 전 회장)한병채, 양찬우(밀양), 이진용(포항), 김용태 의원 등과도 접견기회가 잦았고 효창섬유를 경영하고 반월 라이온스 활동을 벌였던 시절 특히 4선의원의 내무부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민정당 북구 지구당 김용태 의원 산하 청봉회 회원으로 할동 하는 등 정치에 인연을 잠시 갖기도 했다. 또, 교육계 김판영 전 경북교육감, 김주만 , 이원박 ,허창규 , 배순암 , 박재동, 박재석목사, 최달곤 씨 등 교육계 인사 및 대구시 지역 유명인들과 교류를 갖기도 했다.

효창섬유 대표직을 선두로 사회생활의 시작

80년 10월 경찰을 떠나기 직전 직원 100여명 규모의 效昌纖維(효창섬유)를 설립 경찰에서 효창섬유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생활을 시작, 국제309-D지구 반월라이온스 에서 봉사활동으로 봉사상등 을 수상하기도 했다.또 대서중학교 육성회장으로 있으면서 대구광역시 중.고등학교 육성회장 연합회 부회장, 대구광역시 서구지역 육성회장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교육계 봉사활동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또, 대구고등학교 총 동창회, 4회 동기회에서 열성적인 활동으로 총 동창회 편찬이사로 동창회보 2회 발간했고 4회 동기회 총무, 부회장을 맡아 일하면서 동창회장 2회, 동기회장 1회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언론 경력으로는 한국일보, 중앙일보, 전 경북일보, 하나일보, 광역일보(대구신문의 전신), 대구신문을 거치며 한국일보, 중앙일보, 하나일보, 대구신문으로부터 모범상 각 1회를 받았다.1994년 하나일보를 통해 내 고향인 구미지역에 입성 현재 대구신문 중부취재본부에서 부국장으로 취재활동을 계속하며 구미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는 외로운 기자란 직업 속에서 사회 공기가 돼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냉정함을 잃지 않고 객관에 충실코자 노력하며 취재활동으로 부끄럼 없는 생활을 위해 노력 하고 있다.

구미지역에서 기자생활을 통한 기자생활의 족적을 남기고 불우이웃성금 마련을 위해 2004년 4월 8일 한국산업공단 중부지역본부 본관 1층에서 구미. 김천지역에서 10여년간 취재해온 지역의 애환이 서린 "주재기자 24시" 책을 출간하는 출판 기념회를 갖고 이 책의 판매이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거듭해 오고 있다. 1996년 2월 12일 설 명절을 맞아 아내와 함께 술과 떡 등 설음식을 준비 구미시주부교실 회원들과 선산읍 노상리 성심양로원을 찾아 일일 며느리가 되며 봉사활동으로 노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또 2004년5월15일 도개면 정신장애인 시설 보호소 ‘사랑의 쉼터' 원생 18명과 학부모, 교사들을 포항제철, 경주 문화유적지 등을 둘러보는 사회적응을 위한 문화유적지 일일체험을, 그리고 2004년6월12일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 일명 기성마을의 ‘평안의 집'을 찾아 준비한 음식과 음악으로 할머니, 정신장애우 21명을 위한 잔치를 열어주었다.

뿐만아니라 2004년10월16일 구미시 황상동 영구임대 아파트 생활보호대상자, 독거노인 80여명을 구미종합사회복지관에 초대 음식과 음악으로 소외계층 위안잔치를 열어 주는 등 어려운 이웃돕기에 적극 나서고 있고 이러한 활동은 계속 이어질 것을 약속하고 싶다.

이러한 지금까지 인생역정이 그리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내가 걸어온 길이라 지만 성실하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보람을 느끼는 생활이었다고 자평 하고 싶다.앞으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남을 긍정적으로 칭찬하고 그리고 보람을 함께 찾도록 노력하며 여기에서 얻어지는 희로애락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오손도손으로 살아가려 한다.

▲ 한국일보 대구,경북 지사장 시절 집무모습 ▲ 김천시 봉산면 평안의 집
이웃돕기 행사 기념촬영